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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이야기 등

아버지를 보내고

by 들 국 화 2010. 8. 17.

우리 아버지 가 가셨다

생전 함께 살아 계실줄 알았던 아버지가 가셨다.

호랑이보다 더 무섭고 당당하시고 호탕하시던  아버지가 가셨다

들에나가 일만하면 아픈데가 없다고 하시던 아버지가 가셨다

어디로 가셨는지 모르지만 다시는 볼수없는 곳으로 멀리 떠나셨다.

큰손자 10월에 장가 가는것 보고죽게 되어 좋아라 하시더니 어떻게 그새를 못참으시고..

그 옛날 배고프던 시절에 식구들보다 남들을 더 보살피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우리집에 오신 객들은 직위를 막론하고 잘 대접해 보내야 한다고 하시며 거지가 문앞에오면

안으로불러 상을차려주라시던 아버지!

내가 앉았던 자리에 흠 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고 하시던 어머니!

인자하시던 어머님도 호랑이처럼 당당하시던 아버님도, 

 

두분모두 떠나보낸 지금 저는 어떤 삶을 살아야 이다음 제가 떠난후 우리 아이들 에게 어떤 교훈이

남겨질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버지 어머니 처럼 남들을 먼저 챙기는 그런 사람은 아닌것 같아서 말입니다..

 

아버지를 만나면 아버지는 어째서 식구들보다 남들이 더 중요하셨냐고 옛날 이야기 처럼

여쭤보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말들을 할수없게 되었고,아버지를 만나면 재미처럼 아버지는 왜 맨날 말꾼을

밥먹여 보내서 우리를 굶게했냐며 불평처럼 했는데 이제는 그런 이야기도 할수없게 되었다.

옛날 자식업는 옆집 앙우할머니 찬밥을  엄마밥과 바쿼먹었는데 그 밥은 아버지가 모셔오라고 하셨으면

아바지가 드셔야지 왜 엄마가 드셨냐며..

 

할머니 한테, 대고모할머니한데,효를다 했다고 하시지만 그것도 엄마가 하신것이지 아버지는 맨날

엄마에게 명령처럼 했다고,부모님께 효를 다한것은 엄마아니냐고, 아버지께 고모할머니가 마루에 똥싸놓으면

마루틈새에낀 똥 한번 파내보셨냐고 아버지를 놀려대면,그것이 그러냐고 하셨는데 이젠 그런 장난비슷한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 웃어대던 그런 재미도 이젠 할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밭매다 점심시간되어 집으로가는 옆집새댁을 불러 집에가야 점심을 굶고 되돌아 올걸 뭘 가냐며

엄마가불러 고구마 한개를 먹인것은 이해하지만,아버지가 불러서 한사람목이 없으면 아버지가 굶어야지

왜 엄마가 굶어야하냐며 아버지는 엄마 끼니를 걱정해본적이 있냐며 아버지를 놀렸는데 이젠 누구에게

그런말을 해볼수 있을까요?

 

아버지!

옛날에 어린나이로 좁살 한말도아닌 두돼박 사러 할머니 심부름으로 가까운 결성 장 두고 먼 광천장에

갔다가 발바닥이 불키고 배곱아서 죽을번하고 왔다며 결성장엔 몆전(몆전 이라하셨는데 건성들어)비싸서

그랫다며 할머니를 불평하시던 아버지,그 말씀을 가끔 엄마와 하시는걸 우리들은 그냥 흘려보냇는데

아마도 아버지는 그것이 고생 스러웠던 어린시절의 한점 추억 이셨나 봅니다.

 

아버지가 아들주려고 높은실겅에 언저놓은 원기소,과자,우리들이 못먹은줄 아시죠 하면서

성임이 엎어놓고 올라가서 훔처 먹었다고 하면서 아버지는 어째서 아들만주고 우리는 안줬냐고 물으면

그때는 아들이 최고, 딸은 있으나마나 였대나 그럼 지금은 어떠냐고 물으면 후회한다 하셨다.

 

아버지! 그 귀하고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아들을 두고 발길이 떨어지시 던가요?

남달리 아들사랑이 유난하셨던 아버지!

겨울 밤이면 아들방이 추울까봐 이불밑에 손을 넣어보고야 잠자리에 드시던 아버지!

그 귀한 아들에게 말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불효여식 제게도 할말이 있었을덴데 어떻게 그렇게

가실수가 있던가요? 아버지! 어쩐대요?

그래도 아버지와 옛날이야기 하면서 엄마를 기억하며 가슴아파 하면서 울고웃고 했는데 이젠 누구와

그런 대화하면서 웃고 울어본대요?

 

나 어린시절에 어쩌다 떡을 해오면 떡이 식기전에 돌라야 한다며 우리는 손도 못대게하시고 이집저집

돌라서 엄마에게도 불평을 했는데..

밥상에 어쩌다 고기올라오면 홀가닥 집어오면 할머니 드셔야한다며 못먹게하시고 당숙이 오시면

닭 한마리 잡아서 닭죽을 끓이는데,우리는밖으로 내쫒고 당숙만 들이고 큰엄마가 오셔도 닭잡아

우리 내보내고 큰엄마만 드시게 하시던 어머니 아버지,아버지! 

우리들 모이면 이제 누구에게 그런 말들을 주고받으며 옛날에 나 어린시절을 悔想 한대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던날!

호랑이 처럼 당당하시던 아버지가 아무힘없이 슬며시 떠나실때 발만 동동구르던 불효여식 성례 어찌하나요?

아버지가 그렇게 쉽게 가실줄은 몰랐습니다.

그래도 둘째 아들에게는 전화로 나 아무래도 죽을것같다는 말씀을 하셨다구요.

 

큰아들 한데 전화가 안되니까 작은아들 한테해서 유언 비슷한 말로 나 죽으면 어떻게 하란말을

남기셨다는데 얼마나 죽겠으면 그런 말씀을 남기셨을까,그냥 어지럽다고 하셨을뿐 다른데 아프다는

말씀은 없으셨는데..올들어 부쩍 쇠약해지시고 병원에 몆번 다녀오셨지만 그래도 건강하셨는데..

 

쓰러지기 전날(8월6일)큰아들과 서울대병원가서 담당의사 만나고 예약하고 오셨는데

7일밤 11시에 둘째아들 한테 전화하고 바로 쓰러지셔서 큰아들이 전화했을때는 받지못하고

119불러 병원에 갔지만 그것이 마지막이 될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여러번 쓰러저도 일어나셨으니까 이번에도 그렇게 일어설줄 알았는데 그렇게 힘없이 슬며시 가실줄은 몰랐습니다.

나는 몆일전에 아들내외와 손자를 데리고 할아버지가 아무래도 오래살지 못할듯하니 한번 다녀와야 겠다고

다녀온 것이 마지막이 된셈이다.

 

우리 아버지는 충남 홍성군 결성에서 젊은시절을 보내시고 어린시절은 당진군 신평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지내셨고 50대부터 온양에서 보내셨다.

13세의 어린나이로 할아버지를 여의고 소년가장으로 자수성가 하셨는데 어린시절을 생각하면

억울하고 분하시다 고 하셨다.

왜 억울하고 분하시냐고 물었더니 너무 배고프고 너무 고생해서 억울하고 분하시단다.

 

너무어려서 품팔이는 못하고 끼니를 때기위해 남의 일을 가시면 점심시간에 점심 을주면 그

밥그릇을 들고 할머니와 함께 먹기위해 정신없이 뛰다,어느날은 넘어지기도 하는데 그때는

밥그릇이 엎어지지 안도록 밥그릇을 들었다고 하시며 눈물을 글썽이셨다

시간안에 돌아와야 하니까 뛰었다며..

 

이것을 아신 동네 어른들이 할머니 드실밥은 준다며 다먹고 가라고 했다면서 그때를 생각해서

배고픈 사람을 위해 내 밥그릇 을 내놓으려 했지만 그때마다 엄마가 대신 했다면서 죽어서 엄마를 만나면

고생했다고 고맙다고 용서를 빌겠다고 하셨다.

남들이 들으면 이해할수 없겠지만 나는 이해할수 있을것같았다. 나도 아버지 땜에 배고픈적.섭섭한 때가있고

원망스러운 어린시절을 기억하니까..

 

나무장사에 품팔이!

안해본것이 없었다며 그래도 장가가서 엄마가 拮삼해서 논을사고 밭을 사게 되었는데 고생만 하고

먼저간 엄마를 그리워 하셨다.

얼마전에 뵈었을때 내가죽어야 너희들이 편할텐데 하시기에 아버지 돌아가시면 엄마 만날텐데 그럼 무슨말씀

하실거냐 물었더니 잘못했다고 하신다고..

뭘 잘못하셨는데요 했더니 너무많아서 글쎄다...하셨는데 지금쯤 엄마를 만나지 않으셨을까?

 

아버지는 항상 그러셨다. 죽으면 할머니만나서 할말이 있고, 큰아버지 만나고 둘째아버지 만나면 싸울거라 하셨다.

큰아버지는 만주에 가시면서 둘째 아버지 모시고 가기도하고 고모님댁에가서 살기도하고 이리저리 떠돌다가

집에 돌아오시곤 했다며.엄마가 길삼하고 아버지가 키운 소를 팔아서 논을 사려하면 팔아다 준다고 가지고 가시면

한번도 가저온적이 없는데 그래도 우리집 가장이라고 대접한것이 번번히 속아 놀음해서 날렸다고.그때마다 할머니는

둘째아버지를 감싸 싸울수가 없었다며 두고두고 엄마와 이야기하셨다.

그래놓고 염체없으면 또 집을 나가시면 언제고 돌아오고싶으시면 오신단다.

그래서 아버지는 세번째 형수 까지 모셨다며 원망을 많이 하셨다.

 

엄마만 할머니.대고모할머니.둘째엄마.모시고 죽게고생 하셨다며 그래도 엄마는 그분들을 원망하지 안고

감싸주기도 했다며,큰아버지는 부자 였는데 할머니가 일찍돌아가셔서 후추로 들어와 두 아들을 낳았는데

그분이 울 할머니고 둘째아버지 울 아버지다.

큰아버지는 만주에서 돌아가시고 둘째아버지 33살에 3살먹은 조카남기고 가셔서 아버지가 맏아야 했고 

우리 할머니는 나 아홉살에 돌아 가셨다.

아버지는 지금쯤 무슨 말씀을 주고 받았을까..용서를 받았을까..

 

우리 엄마 말씀에 의하면 외할아버지 송사 가있어 변호하러 오신 큰아버지를 만난것이 인연이 되어 이마사돈이

되었는데 동생이 무지 부자라고 속여서 큰 부자인줄알고 시집왔는데 시집오니 할머니가 보리 세말 정도되는 것을

내놓으며 그것이 양식 전부라고 하셨다고..

그래도 엄마는 부모님 걱정 하실까봐 외할머니가 걱정되어 오셨을때 큰집에서 쌀을 구루마로 싫어다주어 편히

산다고 하셨단다.

 

큰아버지가 할머니를 아버님께 부탁하며 밭400평과 초가3칸집을 얻은것이 전부여서 여간 버겁고

어려운 일이였다고 두고두고 말씀 하셨다.

그러니까 우리 엄마는 자식없는 대고모할머니,둘째엄마,할머니 모셔야 했고 부모없는 조카도 키워야 했던것이다.

 

아버지는 조카에게 매질할일이 생기면 내가 하니까 당신은 손대지말라고 하셨다고, 

그래선지 아님 남의자식 키우는것이 힘들었는지 모르지만 우리엄마는 항상 남의 자식을 키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고모님은 내게 그런말씀 하셨다.

너의 애비가 발바닥 없는 신발신고 다니면서 벌은돈이니 돈은아껴쓰고 성격은 애비닮지말고 에미닮으라고..

네 애비가 머리좋고 부모님께 효 를 하지만 성격은 닮지말라고..

근데 나는 아버지를 빼 닮지 않았나 생각한다.

큰아들과 둘째 딸은 엄마를 닮아 무족건 복종형! 둘째아들과 막내딸은 설득형! 나는 아버지를 닮아서

그 자리에서 쏜다 성질이 급하고 지랄이다.

 

그래도 우리아버지는 복 이 많아서 장가를 잘 가셨고 자식도 잘두셔서 장학금타고 학교다니는

박사 아들을 두셨으며,시골 내가 살던고향에 내려가면 노인분들이 자네들은 아버지가 남들에게 잘해서

그 복 을 받아 잘산다며 아버지를 대단한 효자이자 동네 에서 가장어려운 어른 이셨다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밭에서 일을하다가 아버지만 나타나시면 앉아서 하다가도 업드려서 일을 했대나..

 

그렇다 우리아버지는 우리가 생각해도 남들에게는 너무 잘하시고 식구들 에게는 그랬다.

남들 끼니걱정은 하셔도 식구들 끼니걱정은커녕 달달...??ㅎㅎ

식전에 말꾼이오면 누구라도 아침을 먹여 보내는데 부엌에서 일하는 엄마와 누구한사람은 굶는다.

장정밥 을 푸고나면 두사람 밥은 없으니까,그것뿐이랴 이웃집 자식업는 할머니 찬밥들고 오래서 뜨신밥

주시려면 울엄마는 그찬밥을 드셔야하고,점심에 고구마 큰것은 반개 작은건 한개 식구 수대로 쩌서먹으려다

누가 지나가면 불러서 고구마한개 를 먹여 보내면 엄마는 또 굶는다.

 

나 어린시절엔 고구마가 귀하고 대단한 양식이었다.

근데 그 고구마농사 를 결성면에서 우리아버지가 최초로 농사를 지은것이다.

새벽부터 고구마 사러 아줌마들이 들이닥치면 바빳다.

고구마를 캐서 팔았으니까,일본몸들(농민도장)에게 배운 기술이었 단다.

 

그렇게 우리엄마는 배고프고 바쁘고 힘들게 사시다가 5남매중 둘을 여우살이 못하시고 돌아가셨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엄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와 울어버린다.

 

그래도 우리아버지는 92년을 사시면서 20세 까지는 지독한 고생을 하셨고

30대40대엔 땅을사들이는 기뿜도 있었으며,40대50대 세월은 면내,동네에서 존경받는 삶을 사셨고

아들 둘을 공부시키는 재미도 보셨다.

 

온양고를 졸업,고대 장학생 으로 둘째는 한양대 장학생 졸업하는 재미도 보셨고 큰아들 박사학위 받는 즐거움도

대통령 훈장 받는 효를 받았으니,반세상은 고생 하셨을지 몰라도 반세상은 세상에 돈보다 지위보다 더 귀중한

자식들의 효 를 받으셨다고 생각한다.

우리엄마는 그것도 복이라고 고생만 하시고 자식들 공부 끝나기도 전에 일찍 가셔서 자식들 가슴에 한 을 남기셨다.

 

아버님은 세상 끝나는 날까지 호령을 하시다 쓰러지는 시간까지 멋대로 뜻대로 사셨으니 복이 많으신 분이었다고

감히 생각해 본다.

돌아가시는 것도 뜻대로 쓰러진지 5일만에 돌아가셨으니 자신도 고생 하지 않으시고 자식들 고생 할까봐

그렇게 가신것 아닐까?

아버지!

이젠 좋은 세상에서 엄마 만나 손잡고 다니며 편안히 쉬시다가 이승에 다시 오실땐 부자집 귀한 아들로

태어나 공부도 독학아닌 좋은학교 다니며 공부도 원대로 하시고 다시 엄마와 결혼할수 있도록

손잡고 천도환생 하십시요.

엄마가 허락하실지 모르지만요..

 

하느님.부처님께 기원하겠습니다,편안히 쉬십시요.

불효여식 성례 다음 세상 엔 딸이아닌 아들로 태어나서 효를 다하겠습니다.

우리 5남매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맑은 정신과 맑은 정기를 욕되지 않도록 남들에게 배려한다는 말은 못해도

걱정 끼치고 고얀놈 이란 말은 듯지않도록 노력하며 살겠습니다.

편안히 영면 하십시요.

 

아버지 어머니! 우리 여기 있습니다 보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