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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그리움

나의이야기 등

by 들 국 화 2006. 12. 4.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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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절없이 세월만 보내다보니 어느날갑작이 후회와 허무함이 가슴을 때린다.

나 보다 남을 먼저,양보와 바른 마음으로  후회없는 삶을 산다고 살았는데

어이해 멀리 가버린 지난세월이 허무함 으로 남아 가슴을 때릴까?

옆을 볼 마음에 여유도 없이 바쁘게 살다 50줄에야 밖을 내다 볼수있었던 내 삶,

 

나는 시골에서 서울로 어느봄날 부픈꿈을 안고 고무신 신고 상경

회현동에 있는 서라벌학원에 입학 시흥에정착,통학기차를타고 다녔다.

어쩌다 뻐스를 타고 학생이라고 3원을내면 학생증 보자는 차장과 싸우며

촌스런옷에 고무신 신고 학생이라면 누가 믿을까만 난 억세게 우겨댔다.

 

어느날 고모네 오빠에게 그 말을 했더니 성대 빼찌를 주며 달고 다니라고 해서

난 또 확실한 학생이라고 뽑내며 뻐스를 타고 차비를 내미는 순간,또 학생증 보자고..

하는수 없이 학원증을 내밀면 이게 학원증이지 학생증이냐고 무지 싸우는데

학생이다 아니다,난 엄청 억척 스럽고 뻔뻔한 학생아닌 학원생 으로 싸웠다. 

 

성대다니는 오빠책 몆권을 팔에끼고 울 오빠가준 빼찌달고 대학생 흉내를 내며

신발은 고무신에서 삐딱 구두로  옷은,에그 옷 때문에 들통난 가짜학생 창피는 뭐,

대학생 흉내내며 기차로 뻐스로 남산으로 극장으로 다방으로 사방천지 돌아다니던

그때 우리삼총사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할고?그리운 친구들이여..

 

왕민은 이민가고 장숙이는 내돈 이백만원 띠먹고 어디로,도연자는 어디서 살꼬

그때가 내생에 제일 행복했던 시절같아서 그때 그 추억이 그립다.

그때 뻐스비가 학생은 3원 일반은 5원으로 기억하는데 확실한지 모르겠다.

서울을 가려면 대림동에서 뻐스를 갈아타고 다녔으며 시흥은 영등포구 였다.

 

서울에 올라오기 전엔 광천에 있는 광흥 중학교에 다니며 양재를 배웠고

그 어집잖게배운 실력으로 결성읍내에 재건생활 학교라는 간판을걸고 학생을 가르첬다.

한글,양재를..

지금 생각해 보면 한글도 제대로 깨우치지 못한 실력으로 무엇을 가르첫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좀더 확실한 실력을 갖기위해 아버지를 꼬들려 봉선이와함께 서울로유학 온것,

 

티없이맑은 마음과 젊음,티없이 키워오던 꿈!

모두 속절없이 세월에 띄어 보내고 추억에우는 내 삶,그리움에 우는 내젊음,

내 어릴땐 두메산골 가난한 농부의집안에 큰딸로 태여나 배도많이 골아보고

할머니.아버지에게 꾸중들어 울고있는 우리엄마를 많이 보며 자랐다.

 

일하는 머슴을 둘수도없고 부모님 일손을 돕느라 학교는 이름만 걸어놓고,

어느날 담임 선생님이 날보고 성례는 대학생여,해서 난 공부잘해서 대학생이라

하는걸로 착각,뒤에 알고보니 결석을 많이해서 대학생 이라고 부른것이다

 

내가 학교 다닐때쯤해서 우린 가난에서 벗어나 조금 여유있는 가정이 되었으며

우리엄마 길삼에 고구마 재배에 일손이 부족했고 아버지는 손님접대에 바쁘고

난 일손을 도와야해서 공부는 뒷전 이였다.

 

우리 아버지는 명절때도 여느때도 허락없이 밖에 나가놀면 매로 다스렸고

엄청 때려서 지금은 울 아버지가 후회한다

부엌에서 불 때다,물기러오다,학교에서오다,놀러나가서,허락을 받고 나가도

시간이 넘으면 매를 들고 기다린다.

난 지금도 울 아버지를 이해 할수가 없다.

 

그런데 남에게는 세상에 둘도없는 무섭고도 인정많은 호인으로 불리었다.

어느집 쌀 떨어진것 챙기고,잘 빌려주고,잘사주고,부모에게 잘하는 사람에겐

칭찬도 아끼지않고,하면서 우리에겐 엄청 야박했다.

 

학교에서 상장을,통지표를 받아와도 점수가 작으면 줄로서서 매를 맞았다.

때리는 부모마음은 100점이 아니라고 그러겠지만 어린마음에 너무한다고

생각했었다.지금도 그렇다.

우리 동네에 시아버지,제일 무서운 영자 아버지였다.

 

동네 며느리들 앉아서 밭을 매다가도 울 아버지가 지나면 얼른 업드린다

어디든 영자 아버지만 뜨면 난리 법석이다

그땐 울 아버지가 집을비우고 어디가시기만 기다리고 가시면 내 세상이다.

 

어쩌다 친구끼리 돌리며 소설책을 볼때도,연애질 한다고 또는 등잔에

기름 닳는다고,야단처서 이불속에 등잔불 켜놓고 숨어서 책을 볼때도

울 아버지는 용케도 알아본다.

 

그래도 삼십리밖 광천에서 우리친구가오면 참 친절하게 재워 보낸다.

동네 친구도 우리집에서놀땐 아주양같이 순한 아버지 시다.

지금은 울 아버지!! 때려도 좋으니 오래오래 건강 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건강 하시고 행복 넘치는 아버지였음 좋겠습니다. 오래오래 사세요.

 

허무함에 가슴 절이다 허구맹랑 했던 지난 날들이 영화 처럼 스처지나갔다.

바람에 띄어 보낸는지 구름에 날려 보낸건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아쉬운 내 젊음,

맑고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며 허무함에 가슴저리며 지난날 티없이밝고 아름답던

내 젊음이,오늘따라 슬픈 마음으로 가슴을 휘집고 지나간다.

참~아름다웠던 지난 날 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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