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칠십을 바라보면서

나의이야기 등

by 들 국 화 2011. 9. 3. 15:28

본문

오십대를 바라보다.

 

들국화 를 바라보다 문득 눈물이난다. 

라는 남촌님의 글을 읽고 문득 내 나이가 생각난다.

 

내나이는 몆살일까!? 나이를 잊고산지 오랜데..

한해한해 덮고 넘어 갈때마다 부질없는 후회와 아쉬움으로 한숨지며 한해를

시작했던 날들.부와 명예 나는 무엇을 잡고 지금까지 살아왔을까?

 

부도 명예도 이름석자 적어넣을 명함한장 없는 빈곤하고 어리석게 살고있는 한

여인일 뿐,어려서는 부모님그늘에 결혼후엔 남편의그늘에 지금은 아이들의

그늘에서 쉬고있는 셈이다.

 

그렇담 내 그늘에서 쉬어가는 사람들은 누구~없을까?

사람 살아가는데 공짜는 없는데 누구 있을까.

 

활기차고 꿈많았던 20대를 남편과 아이들 을 얻는것으로 꿈을 바꾸었고,

30대엔 아이들과 살아야 하니 삶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허덕거리며 살아왔고,

 

40대엔 내가 이루지못한 꿈을 아이들 에게 걸어보았다.

내 삼십고개는 버리고싶고 돌아가고싶은 내 삶을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주는

기쁨으로 대신했다

 

이십 대 책가방메고 대학가는것 ..그때는 대학가는것이 나의 꿈이었다.

책몆권 팔뚝에끼고 학원가면서 대학생 흉내 내던시절!

차장과 학생이다 아니다,쌈박질 하던 시절이 새롭다.

학원생은 왜 학생이 아닌가 지금도 궁금타..ㅎㅎ

 

하지만 딸이란 이유로 가망없는 꿈일 뿐이었다.

나는 삼십고개에서 많이울었다.

이유야 많았겠지만 그 시절엔 그렇게 사는것인줄 알고 살았으니까,

탈피 방법이야 많았겠지만 내가 살고있는 그 자체가 싫어서 사는것이

애터저서 울었다. 

 

엄마 돌아가시고 못다한 사랑때문에 해가 바뀔때마다 울었던 기억도난다

엄마보다 한살더 엄마보다 일년을 더 살았구나 하면서 정월초하룻 날마다..

 

내가 이루지못한 꿈 때문도 아니요 사십고개를 넘어야하는 애전함도 아닌

고생하며 살다가신 어머니께 효 를 다하지못한 죄책감 때문에도 많이울었다.

 

내남편 결핵3기!

이것도 부모님께 불효일뿐이다. 하지만 결혼 3개월후 발견된걸 낸들 어쩌겠나,

긴세월 온식구모두 사위병 수발에 최선을 다하느라 엄마의 혈압은 별로신경쓰지

못한탓에 그만 엄마를 보내고 말았다.이것이,

만고의 불효이다.

 

그때 울 아버지 하신말씀은 나도 자식을 키우니까 어쩔수 없으니 사위는 처가에

보내지말고 볼일있음 네가 와라,

그리고 동생들 울 집에 얼씬도하지 못하게 하셨다.

 

그래서 지금 연구소에 있는 내동생 서울로 시험치러 오면서 독서실에서 자고

15일동안 라면만 먹고 시험을 보았다는 사실을 시험이 끈난 다음에 알고도

많이 울었다.그래도 다행인것은 고대 장학생으로 합격한 기쁨으로 치유를 했다.

 

그 어렵던시절 다 보낸지금 나는 아버지처럼 박사아들은 두지못했지만

그래도 나름 즐기며 살고있지만,

아버지를 부러워 하면서도,나는 아버지처럼은 살지 말아야지 하며 살았다.

 

근디 나도모르게 아버지를 닮아간다.

그렇다고 전기불도 아끼는 절약정신은 아니다.아무렴 상주는것도 아닌데..ㅎㅎ

나뿐 성질만 닮아간다..베푸는 마음도 배워야 할텐데..

 

정신없이 살다가  50고개가 한발한발 닥아올때 꽃은피어도 울긴 울었다.

한고개 한고개 냉큼냉큼 넘다보니,내 마음은 아쉬운 쇠사슬에 꽁꽁 묶여서

여자라는 이름을 버려야 했고,난 가장아닌 가장이되고 말았다.

이것을 운명이라고 하는건가..

 

50고개는 훌쩍 뛰넘어 60에 도착했을때 나는 대가족을 이룬 활짝핀 할매가 되었고,

그러고 보면 세상은 공평하다는 말이 맞는가보다.

꽃이 피었다고 해서 갑부가 되었거나 명예을 얻은것은 아니었고 집안의 우안에서

벗어났다란 말이다.

 

친정한번 마음펴고 다녀올수없는 온가족의 피눈물을 혼자서 삼켜야 했으니까,

어찌 죽고싶은 마음이 한두번 뿐이었겠나,그때마다 나를 사랑해주는 주의

사람들 힘으로 살았다해도 과언은 아니다.

인생살이 얼킨매듭은 하나풀기가 어렵지 하나가 풀리기 시작하면 하나하나 매사

술술 풀리는것 아닐까? 이것이 내가 살아오면서 느낀 순리다.

 

항상 내인생은 고만 이란놈과 공생하며 살아간다. 차면 넘치는걸..

그놈이 없었다면 내 생활은 지금보다 조금은 나을수도 있었을텐데 그놈의

고만이 때문에..ㅎㅎ

60을 넘어보지 않은사람들은 70을 바라보는 60인생의 심정이 어떤지 아무도

닥처보지 않았으니 모를것이다.

뼈를 갈아먹는 맛이라면 알아들을까나..

 

내 삶에 아쉬움과 후회는 갖지말자 그리고 슬퍼하지도 말자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으니까,아직은 젊음이 남아있다고 희망을 가저보자.

 

애들아! 엄마의 40대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바르고 예쁘게 커주고 엄마의 20대 꿈을

대리만족 할수있도록 도와줘서 고맙데이..

오늘은 육십평생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없이 살았는지를 되돌아보는 기회의날 .. 

 

애들아! 예뿐마음 아름다운 마음 강인한마음 하나 키우면서 씩씩하고 정직하게

지금처럼만 살아주렴,애들아! 사랑한다. 

'나의이야기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욕지도(11월9일)2박3일 여행기  (0) 2011.11.15
겁없이 떠나는 엄니들  (0) 2011.11.03
장마  (0) 2011.08.20
수마가 할키고 잘난사람이 할키고  (0) 2011.07.27
내가 머문자리는 아름답게  (0) 2011.07.04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